본문 바로가기
책이 좋아서/소설

노인과 바다, 원서로 읽어야 하는 이유

by 김보이 2020. 9. 9.
반응형

안녕하세요 핸수입니다.

 

오늘은 원서와 번역본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보려고 해요. 노인과 바다로 가기 전에 다른 책 한 권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동화책 <아낌 없이 주는 나무>를 아시나요?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동화인데요. 사과나무 한 그루가 한 소년을 평생 동안 도와주는 내용입니다. 어릴 때는 놀이터가 되어주고, 자라서는 사과를 따서 돈을 벌게 해주고, 나뭇가지를 잘라 집을 짓게 해주고, 기둥을 잘라 배를 만들게 해주고, 소년이 노인이 되자 나무 밑둥에 앉아 쉬게 해줍니다. 말 그대로 아낌없이주는 나무인데요.

하지만 이 책의 원제는 <The Giving Tree>입니다. 직역하면 주는 나무정도가 될 것 같아요. ‘아낌없이라는 표현은 원서에는 없습니다. 이 경우 아낌없이를 번역본에 추가함으로써 제목이 더 인상적이고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른 책의 원서와 번역본을 비교해 읽다보면 제목이 아닌 본문 내용에서 이처럼 과장된 번역이 종종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주었습니다.’가 원래의 문장이라면 번역본에서는 나무가 아낌없이 주었습니다.’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원서와 번역본을 읽는 느낌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아낌없이라는 표현이 문장에 없는 경우가 오히려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아낌없다는 말이 없어도 문맥을 통해 '아낌없이 주고 있구나'하고 느껴질 때 감동이 함께 오잖아요.

 

노인과 바다에는 노인과 소년이 등장하는데요. 노인은 어부입니다. 노인과 소년은 커다란 물고기가 나타날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과연 노인에게 그런 물고기를 잡을 힘이 아직 있을지 이야기를 합니다. 노인은 말합니다. “내 생각만큼 내가 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But I know many tricks and I have resolution.”

직역하면 하지만 나는 요령을 많이 알고 있고 내게는 의지가 있어.”정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번역본에서는 의지=resolution’에 더 힘을 실어줍니다.

 

그렇지만 나는 많은 요령을 알고 있고 굳은 의지가 있지.”
그래도 나는 이런저런 요령도 있고 투지도 강하니까.”

빠르게 읽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한 문장씩 음미하며 읽으면 이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집니다. 노인은 초연한 캐릭터입니다. “난 의지가 강해!”라고 소리치는 젊고 패기 넘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노인의 굳은 의지강한 투지는 표현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문맥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저는 노인과 바다를 영어로 천천히 읽으면서 이런 문장을 여러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우리말로 읽을 때는 큰 감동이 없는데 원서로 읽을 때는 감동적인 문장이 많았습니다. 번역이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애초에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미를 똑같게 번역하자면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번역하다가는 감동이 사라지고 감동적으로 번역하려다가 원래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 최선의 선택은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해서 원서로 읽기에 도전하는 게 아닐지..

직독직해 책 시리즈에는 문장 별로 원서와 우리말이 함께 나와 있으니 이 책으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비밀 댓글로 여러분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면, 일주일에 1번 최신 건강정보와 책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