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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서/소설

회색인간 - 김동식 - 줄거리/해석/독후감/소설추천

by 김보이 202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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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이야기가 필요한 분들 위한 안성맞춤 소설.

 

안녕하세요. 핸수입니다.

수년 전 서점에서 책 <회색인간>의 독특한 표지를 본 기억이 남아있어요. 최근 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다 그 제목, 그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책인지는 모르지만 표지가 주는 익숙함에 홀려 일단 빌려왔습니다. 읽어보니 기존 소설과는 판이한 스타일이었어요. 덕분에 신선함을 만끽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내용은 현대판 이솝우화 같아요. 20편이 넘는 짧은 소설들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비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책에 실린 첫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 <회색인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땅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의 소행이었다.

 

지상 세계 만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소설이 시작됩니다. 지저 세계의 인간들은 지상 세계 인간보다 강력해요. 그 힘을 이용해 어이없는 요구를 합니다.

 

지저 세계가 꽉 차버렸다. 우리가 살아갈 땅을 너희 손으로 파줘야겠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 명의 사람들은 반발도 해보고, 누군가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소용없습니다. 그들은 사라진 존재들입니다. 힘껏 소리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악조건에서 땅을 파요. 먹을 것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요.

 

그런 사람들 사이엔 웃음이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사랑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고, 서로를 향한 동정도 없었으며, 대화를 나눌 기력도 없었다.

 

사람들은 상황을 받아들인 채 끝없이 일을 하고, 끝없이 굶고, 끝없이 죽어나갑니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요.

 

이 여자가 노래를 불렀소.”

 

한 여자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래라니? 사람들은 여자를 때리고 돌을 던집니다. 땅이나 팔 것이지 왜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냐는 거예요.

 

예술의 탄생을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예술은 얼핏 보기에 아무 쓸모가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여자의 노래를, 한 남자의 그림을 무시합니다. 그럼에도 여인은 돌을 맞아가며 멈추지 않고 노래를 이어갑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을 때까지, 그러다 사람들이 무관심해질 때까지, 그러다 누군가가 여인에게 먹을 빵을 나누어주는 진기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처음이었다. 땅을 파지 않는 이에게 먹을 걸 나누는 행위는 이곳에서 정말로 처음이었다.

 

이런 악조건에서 예술이 탄생하고 그것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다니,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술하고 싶은 본능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일 vs 잘하는 일 중 무얼 선택해야 하는가로 고민합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면 90%는 예술 관련 직종을 이야기한다고 해요.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싶어 합니다. 돌을 맞아가면서조차 노래를 멈출 수 없었던 여인의 마음은 소설에만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라 모두에게 내재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한 편,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한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거는데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럼 자네는, 이곳의 모습을 그릴 수 있나?”
, 그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릴 수 있나?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굶어 죽은 이들을 그릴 수 있단 말이야? 반항하다 머리가 터져나간 그들을 그릴 수 있단 말이야? , 손톱이 뜯겨나간 이 손을 그릴 수 있는가?...(중략)”
그럼 그리게. 자네는, 그림을 그리게.”

 

저는 처음 한국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요즘 한국소설은 음울한 분위기가 많은걸까? 왜 모든 젊은 작가가 비슷한 주제, 성소수자와 페미니즘 문제를 다루는 걸까?

이 부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이 질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 그게 문학의 역할, 예술의 역할이었구나. 가려지고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리고 예술을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삶은 그대로지만 마음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우리는 힘든 상황에 처해도 앞날이 희망적이면 그 희망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암울하고 미래에도 희망이 없으면 의지할 곳이 없잖아요. 그럴 때 강력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게 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소설 속 이야기를 읽는 것, 슬픈 노래를 듣는 것.

저는 소설을 읽으며 한국의 판소리와 스페인의 플라멩코가 생각났는데요. 두 문화의 정열적이고 한 맺힌 듯한 노랫가락이 소설 속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지 않나. 두 문화는 어쩌면 과거 두 나라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자의 역할을 했던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 이었습니다.

회색인간 2탄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2020/09/02 - [책이 좋아서/소설] - 회색인간 김동식 줄거리/해석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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